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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장경 오쇼라즈니쉬 명상 강의록 1장   2014-02-20 (목) 15:22
남국정사   2,489



42장경 오쇼라즈니쉬 명상 강의록  

  

  1장       

 

그대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42장경>은 오쇼 라즈니쉬의 명상강의록이다. 부제는 "그대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이고.
1995년 성하출판사에서 펴낸 두 권의 책이다.
하여, 출판사 측에서 저작권 운운하면 문제될 수도 있음은 염두에 둬야 한다.
라즈니쉬에 의하면,' 42장경은 붓다의 초기 사상부터 대승, ()까지의 사상들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경전이라고 한다.
그래서 구도자들이 처음 진리의 길로 들어서서 여행을 마칠 때까지 빠지기 쉬운 여러 가지 오류와 경계들을 지적하고, 보다 깨어 있는 의식으로 길을 가도록 하여, 마침내는 수행마저 넘어선 경지까지 이끌어 준다. 그리고 그 과정과정들은 하나하나 빠뜨릴 수 없이 중요한 것들이며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는 여행의 과정들이다.'(번역자 황강우 서문에서)
[경전소개]
이 경전 42장경은 인도에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 그것은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로는 전혀 존재한 적이 없다. 이 경전은 오직 중국에만 존재한다. A.D. 67, 漢왕조의 명황제 때에 몇 명의 불교 스승들이 붓다의 메시지를 가지고 중국에 초대되었다.
그 불교 스승들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지만 한 그룹이 중국에 들어갔다. 황제는 중국 사람들에게 처음 불교를 소개함에 있어 불전에서 발췌해서 소책자를 만들 것을 명했다.
불교 경전은 매우 방대하고 불교 문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경전들이 존재하며 매우 미세한 부분들까지 다루고 있다. 붓다는 이성적인 분석을 믿기 때문이다. 그는 온갖 것의 뿌리까지 파고 들어간다.
그것은 매우 어려웠다. 붓다와 같은 사람이 켤고 존재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나라에 무엇을 번역해 소개할 것인가? 그래서 이 불교 스승들은 42장의 작은 선집들을 제작했다. 그들은 여기저기에서, 이 경전 저 경전에서 붓다의 말들을 모았다.
이 책은 논어와 같은 방식으로 편찬되었다. 왜냐하면 공자의 말과 유교 경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42장경은 붓다의 말씀을 모아 놓은 새로운 편집으로 구성되었다.
 
1. 가장 훌륭한 길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고요하게 되는 것
이것이 가장 훌륭한 길이다.
부모를 떠나 출가하고
마음을 이해하여 근원에 도달하고
무형(無形)의 법()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사문(shramanas)이라고 한다.
계율을 잘 지키고
행위가 순수하고 때묻지 앟으며
성자의 결실에 이르기 위하여 정진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아라한(arhat)이라 한다.
그 다음은 아나함(anagamin)이다.
이번 생이 끝날 때
아나함의 영혼은 천상계로 올라가
아라한을 성취한다.
그 다음은 사다함(skridagamin)이다.
사다함은 천상계에 오른 후
한 번 더 지상에 돌아와서
아라한을 성취한다.
그 다음은 수다원(srotapanna)이다.
수다원은 일곱 번 죽고
일곱 번 태어난 후
마침내 아라한에 도달한다.
욕망이 단절된 사람은
수족이 끊어진 것과 같아서
다시는 그 욕망을 쓰지 못한다.
(해설)
붓다는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다. 그 길은 내면으로의 여행으로 안내한다. 자기의 내면에 침잠하려면 에고를 버려야 한다. 욕망이 끊어진 침묵 속에서 세상과의 교감이 싹튼다. 자아도 타인도 없이 오롯이 관계만 남는다. 그것이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세계이다.
어떻게 욕망을 끊는가? 붓다는 말한다. 다만 ‘지켜보라’.
믿음은 의심을 바탕으로 공고해진다. 맹목적인 신앙에는 단순한 믿음만 있다. 그것은 한 순간의 의심으로도 쉽게 무너진다. 의심하는 것, 회의하는 것에서 비로소 삶에 대한 앎이 시작되는 것이다. 붓다는 믿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의심 속으로 깊이 들어가라, 두려워하지 말고 바로 의심의 끝까지 가라’고 말한다. 의심의 전 과정을 끝까지 여행하라고 말한다.
그 여행이 우리를 “저 너머”로 안내한다. 의심이 의심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의심의 끝까지 갈 때만 믿음이 온다. 우선 믿음을 의심하라. 어느날 모든 것이 의심으로 가득 찰 때, 갑자기 새로운, 궁극적인 의심이 떠오른다. 비로소 의심이 시작되는 것이다. 의심이 의심을 죽이고 의심이 의심을 파괴하여 마침내 신뢰에 이른다. 이 신뢰는 의심의 반대가 아니라, 의심을 초월한, 의심의 부재(不在)이다.
‘지켜보라.’ 우리 안의 수많은 욕망을 지켜보라. 욕망이 있으면 고요해질 수 없다. 의심을 초월한 신뢰가 공고한 종교심을 유발하듯이, 욕망 또한 그 부재를 경험하는 고요로 닿게 된다.
사문이란 슈람(shram)이란 어원에서 왔다. 슈라마는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찾아야 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힘들지만 의지할 곳은 없다. 스스로 성숙해져야 하고 스스로 자신 속에서 충만되며, 스스로 충분한 혼자가 되고 침묵하며 고요해 질 것이다. 이것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붓다다. 사문의 길에서 진리는 우리 존재로부터 일어난 성장의 표현이다. 진리는 바깥에서 발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깨닫게 되는 ‘분명한’ 것이다. 막연한 존재의 표현인 ‘어떤 것’이 아니라, 깨닫지 못한 상태여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그 어떤 존재보다 확실하고 뚜렷한 것이다. (42장경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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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14-12-07 22:48
 
욕망이 단절된 사람...쉽게 말하자면...욕망으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고통과 행복의 경계가 자유로운 사람요...?...

경허스님 참선곡 
끝까지 가라